파시브하우스, 기후 보호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1)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8일까지 3주간 제24회 세계 파시브하우스 대회(the 24th International Passive House Conference)가 온라인상에서 열렸습니다. 온라인에서 열린 것은 최초였습니다. 파시브기술연구소는 이 대회에 참여하여 여러 발표들을 경청하였습니다. 대회가 마무리된 지는 다소간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미처 소화하지 못한 내용을 반추하기도 할 겸해서 이번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발표된 내용 중 중요한 것들을 추려 하나하나 정리, 소개합니다.
대회가 개막된 9월 20일에는 개막 본회의(opening plenary)가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의 볼프강 파이스트(Wolfgang Feist) 박사가 개막 기조 연설을 하였습니다. 파시브하우스 개념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범위의 파시브하우스 운동을 30년째 이끌고 있는 파이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늘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이스트 박사의 24회 세계 파시브하우스 대회 기조 연설 내용을 간추려 옮겨보겠습니다.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파이스트 박사는 파시브하우스[1]의 좋은 점은 기후 보호를 포함하여 아래와 같이 10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파시브하우스가 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바가 매우 넓고도 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기후 보호
- 건강한 생활 환경
- 쾌적한 주거 공간
- 구조 보호
- 저렴한 주택 공급
- 기후 보호 이상의 지속가능성
- 지역내 생산과 시공
- 사회적 조화와 평화
- 지구적으로 공정한 분배
- 기존 지식과 참여 존중
어떻게 파시브하우스가 이토록 광범위한 차원의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파이스트 박사의 설명을 연설과 발표문을 참고하여 하나하나 옮겨 보겠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파이스트 박사의 연설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취지를 옮기면서 일부는 간추리고 일부는 추가 설명을 덧붙인 것임을 미리 알려둡니다.
기후 보호 Climate protection
건축물을 운용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는 전세계의 총 에너지소비량의 약 40%에 달하고, 이중 가장 심대한 몫(60% 이상)이 냉대 지역의 난방에 쓰입니다. 크게 보아 전세계 에너지소비량의 30% 가까이가 난방에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시브하우스는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해 난방에너지를 10분의 1 이하로 소비합니다. 정의상, 계산상 그러할 뿐아니라 파시브하우스 표준에 따라 지은 건축물이 실제로 넷제로에 가깝게 난방에너지요구량을 줄인다는 점은 거듭해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파시브하우스는 건축물의 난방에너지와 냉방 등 여타의 에너지를 대대적으로 줄임으로써 기존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두고도 일반 건축물 대비 90% 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기후를 보호하는 데 아주 크게 이바지합니다. 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이 극적으로 줄기 때문에 기존의 가스 난방 설비나 기름 난방 설비를 그대로 두어도 바이오매스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얻은 가스와 기름만으로 난방을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아예 난방 설비를 전기 히트펌프로 하면 히트펌프의 200~300%가 넘는 효율 덕분에 난방에 필요한 최종에너지량을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햇빛과 바람에서 얻은 재생가능전기로 손쉽게 난방을 할 수 있어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에 훨씬 유리합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통상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량과 요구량 사이의 계절간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계절간 저장 설비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난방에너지요구량이 극히 적거나 0에 가깝기 때문에 아주 적은 용량의 계절간 에너지 저장 설비나 바이오매스 등 다른 재생가능에너지원 연료의 보조만으로 완전한 재생가능에너지 살림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파시브하우스는 완전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생활 환경 Healthy living environment
건강한 생활 환경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실내에 곰팡이가 피지 않고 유해 기체가 없는 좋은 공기질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실내에 곰팡이가 피고 건축물의 구조가 손상되는 “병든 건축물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 현상은 보통 물방울 맺힘, 즉 결로 때문에 일어납니다. 건축물의 실내 표면 중 유달리 찬 곳이 있거나 바깥의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물방울이 맺히거나 그 주변에 습기가 차게 됩니다. 여기에 곰팡이가 피고 구조물이 차츰 썩어들어갑니다. 또 팽창 수축을 거듭하면서 손상이 생깁니다.
파시브하우스는 아주 고르게 높은 수준으로 단열을 해서 실내에 찬 표면이 생기지 않습니다. 열교를 할 수 있는 한 줄여서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부분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기밀 시공을 하기 때문에 바람이 새어들오는 틈이 없고, 충분히 환기를 하므로 실내 습도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기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과 건축물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들이 원천 차단되는 것입니다.
또한 파시브하우스는 열회수율이 최소 75%[2] 이상인 열회수환기장치로 기계식 환기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항상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고 묵은 공기는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자연히 미세먼지를 포함하여 실내의 유해 기체는 늘 낮은 농도를 유지하게 되고, 직접적으로 호흡의 질에 영향을 주는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바깥 공기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지역과 여건에 따라 실내에 방사성 기체인 라돈의 농도가 높은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환기를 하는 파시브하우스 안의 라돈 농도는 이런 곳에서도 기준치 이하로 낮게 유지됩니다.
이러한 파시브하우스의 환기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사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교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1명의 감염자가 있을 때 시간당 공기 교환율이 높아짐에 따라 감염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따금 창을 여는 방식의 환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기계식 환기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주거 공간의 열적 쾌적성 Residential comfot
파시브하우스 표준의 기본 접근은 적절한 외피 자재와 설비들을 선택하여 최적의 열적 쾌적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파시브하우스 연구소로부터 인증된 파시브하우스 자재들은 바깥 기온이 영하 이하로 떨어져도 실내 표면 온도가 쾌적성 조건 이상을 유지할만큼의 실내외의 온도 차이를 최대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밀 자재와 기밀 조치도 웃풍이 생기지 않도록 바깥 공기가 새어들어오는 것을 확실히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굳이 인증 자재를 쓰지 않더라도 파시브하우스 계획 도구인 PHPP가 계획 과정에서 실내 표면 온도가 낮은 부분을 알려주기 때문에 계획 과정에서 쾌적성을 해칠 수 있는 자재를 적절한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구조 보호 Structural protection
구조 보호는 파시브하우스 개념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고단열, 기밀, 열교와 결로 방지, 내후성, 이 모든 것이 파시브하우스의 요소이자 구조 손상을 막는 구조 보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파시브하우스로 건축물을 계획하여 짓게 되면 건축물의 구조가 열적으로 스트레스를 겪는 문제, 습기와 결로로 손상되는 문제, 찬공기가 새어들어와 손상되는 문제 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가 더 오랜 기간 안정되게 보호됩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파시브하우스가 일반 건축물보다 훨씬 더 오래 간다는 말입니다.
저렴한 가격의 주택 공급 Affodable housing
에너지 효율적 건축물은 가격이 적당하고 경제성 있는 수준이어야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접근하게 됩니다. 파시브하우스 개념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파시브하우스를 만드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을 평방미터당 40~60유로 사이로 맞추자는 목표가 세심한 설계에 힘입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점차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 10센트 가량 월 임대료 부담이 오르게 되는데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만약 저소득 세입자에게 이 금액이 문제가 된다면 1인당 최대 연 36유로 수준의 공적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예산은 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조처는 난방 연료에 보조금을 주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적으로 훨씬 책임있고 경제적으로도 탁월한 것입니다. 오늘날 평균 난방비용에 비춰본다면 난방 연료 보조금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입니다.
파시브하우스가 절감하는 에너지 비용과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데 들어가는 추가 투자 비용을 비교해 보면 절감되는 에너지 비용으로 추가 투자 비용을 감당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유럽의 경우입니다. 에너지 비용과 전기 요금이 과소 책정되어 있고, 보통의 주택 건축의 질과 비용이 유럽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인 한국은 파시브하우스의 경제성이 아직 유럽만큼 나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저에너지주택을 짓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추가 비용보다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절감되는 에너지 비용까지 고려한다면요.
(글이 길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앞 부분만 먼저 올리고 나머지 부분은 2편으로 올리겠습니다.)
주석
[1] 파시브하우스(Passivhaus; Passive House)는 분명한 정의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개념입니다. 아래의 조건들을 만족하는 건축물을 파시브하우스 표준을 따르는 건축물, 곧 파시브하우스라고 합니다.
- 난방에너지
- 연간 난방에너지요구량 ≤ 15 kWh/m²·yr 또는
- 난방부하 ≤ 10 W/m²
- 냉방에너지
- 연간 냉방에너지요구량 ≤ 15 kWh/m²·yr + 해당 기후값과 해당 건물에서의 제습에너지요구량 상한값 (서울 기후 통상 18~20 kWh/m²·yr 이하)
- 전체 일차에너지
-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환산한 재생가능일차에너지(PER) ≤ 60 kWh/m²·yr 또는
- 화석연료로 환산한 화석연료일차에너지(PE) ≤ 120 kWh/m²·yr (한국은 125 kWh/m²·yr)
- 기밀 성능
- 실내외 기압차 50 Pa일 때 시간당 실내 공기 교체율 n50 ≤ 0.6
- 여름철 쾌적도
- 실내 기온 25 ℃ 넘어가는 시간이 일년 중 10% 이하
위와 같은 주요 기준과 기타 더 상세한 기준들을 파시브하우스 계획 도구인 PHPP 상의 시뮬레이션으로 만족해야 비로소 파시브하우스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파시브하우스는 소수점 이하 한 자리까지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개념이며, 국제적으로 그 기준이 엄격하게 합의되어 있는 건축 표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방에너지요구량이 50 kWh/m²·yr 이하인 경우까지 임의대로 패시브하우스 인증을 주는 단체가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입니다. 그 결과 현재는 대충 단열이 어느 정도 잘 된 것 같으면 제멋대로 패시브하우스로 부르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이러한 건축물도 기존의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해 볼 때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과학적 개념을 임의로 흔드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큽니다. (→ 본문으로)
[2] 파시브하우스 기준에서 요구하는 열회수율은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 PHI)에서 수립한 계산 방식에 따른 것으로서 열회수환기장치 업체에서 말하는 열회수율과 대략 12% 포인트 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 때문에 PHI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열회수환기장치을 쓰는 경우에는 제조사가 제시하는 성능 인증서 상의 열회수율에서 12% 포인트를 뺀 값으로 환산을 합니다. 가령 제조사 기준 75%의 열회수율을 가진 열회수환기장치의 열회수율은 63%로 셈하여 반영합니다. (→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