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회수배수기술, 탄소배출없애기를 향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레오나르도 에너지(Leonardo ENERGY)는 유럽의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유럽 구리 연구소(European Copper Institute)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곳에서 에너지전환에 관련된 각종 백서와 보고서들, 그리고 중요한 웨비나를 접할 수 있는데 지난 11월 26일에는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웨비나가 있었습니다. 8월에 발표한 백서에 기반하여 열회수배수기술의 원리를 소개하고 유럽의 탄소배출없애기에 이 기술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럽의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논의 및 개발 현황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겠기에 두 차례에 걸쳐 이 웨비나와 백서의 내용을 전해 보겠습니다.
80%가 버려지는 온수에너지
EU에서 건물 분야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40%,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의 3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중 주거용 건물 부문만 본다면 난방에너지가 63.6%로 1위, 온수에너지가 14.8%로 2위에 해당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은 난방에너지 비중이 매우 크고, 온수에너지의 비중은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새로 짓는 건물의 상당한 비중이 파시브하우스나 저에너지하우스 수준으로 지어지고 있고 기존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이기 위한 수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점차로 난방에너지의 비중이 줄고 있습니다. 반면 온수에너지의 절대량은 줄지 않고 있어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유럽의 주택에서만 매일 2천2백만 m³의 온수를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온수를 만드는 데에 들어간 열의 80%는 배수구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절대량으로 보나, 점차로 커지고 있는 비중으로 보나 온수에너지 부문에 대한 탄소배출없애기 대책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열회수배수, 당장 손에 잡히는 해결책
그런데 이 버려지는 온수에너지를 최대 70%까지 되찾아올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먼 앞 날을 내다보고 개발을 해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있고, 적용 즉시 효과를 발휘하는 손 안의 기술, 바로 열회수배수(Wastewater Heat Recovery; WWHR 또는 Drain Water Heat Recovery; DWHR) 기술입니다. (녹색아카데미 웹진에서는 이 기술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실은 바 있습니다.[1] 자세한 설명은 이 글들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열회수배수는 지극히 단순한 기술입니다.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배수의 열을 차가운 상수가 빼앗아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배수관과 상수관을 붙여놓건, 배수관을 상수가 감싸고 들어오게 하건, 배수가 상수관을 휘감아 흘러나가게 만들건 열교환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환경이 망가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배수의 열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잘 고안된 열교환장치만 한 번 설치해두면 아무런 추가 조치 없이 10℃ 정도의 상수 온도를 최대 30℃ 까지도 올릴 수 있습니다. 차가운 상수가 배수의 버려지는 열을 빼앗아 데워져서 들어오게 되면 그만큼 온수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것입니다.
샤워 부문은 온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부문입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온수의 80%가 샤워에 쓰인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샤워는 열회수배수에 최적인 부문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배수가 흘러나가는 동시에 차가운 상수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샤워의 배수는 가정 내 다른 배수나 오수에 비해 오염도가 적어서 열회수에 이상적이기도 합니다.[2]
따라서 샤워기를 쓰는 단독 주택이나 공동 주택에서 열회수배수를 할 수 있습니다. 주택 뿐아니라 샤워 온수를 많이 쓰는 스포츠 시설, 미용실, 호텔, 수영장과 같은 비주거 건물에도 쉽게 도입할 수 있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 뿐아니라 기존 건물에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어 적은 비용으로 단기간에 널리 보급할 수 있는 아주 유력한 탄소배출없애기 해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열회수배수기술의 현황
유럽에서는 2010년 이래로 열회수기술 분야에서 326개의 특허출원이 있었습니다. 이 분야의 전세계 특허출원의 70%입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는 17,000 가구의 연간 온수에너지 소비량에 해당하는 300 GWh의 에너지를 열회수배수를 통하여 회수하였습니다. 가장 많이 설치된 장치는 수직 파이프형으로서 150,000개 이상의 시스템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유럽 열회수배수 협회(WWHR Europe)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6개국의 12개 제조업체와 유럽의 1개 연구소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회수배수장치가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입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건축 법규에 열회수배수장치 관련 표준이나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RT2012와 곧 시행될 RE2020에 열회수배수를 재생가능에너지 열원으로 포함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신축 건물의 에너지성능 계산 소프트웨어에 열회수배수에 관한 입력항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행 에너지성능인증제(EPC) 규정에 따른 것인데, 2021년부터 시행될 제로에너지건축물(BENG) 규정 역시 열회수배수에 관한 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9년 10월 주택·커뮤니티·지방정부부(MHCLG)에서 열회수배수가 가장 경제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임을 적시하고, 2020년 이후 신규 주택에 대한 건축 규정에 열회수배수가 훨씬 중요하게 명문화될 것임을 예고하였습니다. (각국의 관련 규정에 대한 원문의 언급이 너무 간단하여 의역 과정에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나? – 한 가구 사례
다음과 같이 평균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한 가구의 1년간 온수에너지 사용량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샤워 1회당 시간 : 9분
- 찬물 온도 : 10 ℃
- 보일러에서 만든 더운물 온도 : 60 ℃
- 찬물 더운물 섞은 샤워물 온도 : 38 ℃
- 분당 물의 흐름 : 9.2 리터/분
- 1년 샤워하는 날 수 : 365일
- 가구 당 평균 구성원 수 : 2.3명
- 전기의 이산화탄소 배출 계수 : 0.34 kg/kWh (네덜란드 표준 NTA8800)
- 가스의 이산화탄소 배출 계수 : 0.183 kg/kWh (네덜란드 표준 NTA8800)
이에 셈해보면 열회수배수장치가 없는 평균적인 가정의 1년간 온수에너지 사용량은 아래 표와 같이 전기의 경우 2,264 kWh, 가스의 경우 231 m³/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기의 경우 770 kg, 가스의 경우 414 kg으로 계산이 됩니다.
여기에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들의 평균치인 열회수율 56%[3]의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었다고 가정하면 다시 위 표와 같이 전기의 경우 1,430 kWh의 온수에너지 소비에 486 kg의 이산화탄소 배출, 가스의 경우 144 m³/년의 온수에너지 소비에 262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는 것으로 계산이 됩니다. 열회수배수장치를 통해서 전기의 경우 833 kWh의 온수에너지를 절약하고, 283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은 셈입니다. 가스의 경우는 85 m³/년의 가스와 153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감한 셈입니다.
가상적이지만 평균적인 이 상황에서 열회수배수장치를 통해 37%의 온수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용으로 보면 대략 연간 50~150유로의 온수에너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나? – EU 28개국
2017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28개국의 주거 온수 부문의 온수 에너지는 495 TWh로 주거 분야 최종에너지 소비량 3,342.52 TWh의 14.8%를 차지합니다. 이 중 샤워 온수에 들어간 에너지는 주거 온수 에너지의 80% (연간 396 TWh)로서 유럽연합 28개국 전체 최종에너지 소비량(12,329.08 TWh)의 3.2%에 해당합니다.
유럽연합 28개국에서 목욕과 샤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 대부분이 화석연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온수를 소비할 때 바로 생산하는 순간 온수 방식에 쓰이는 에너지원인 전기와 가스 두 개의 에너지원에서만 매해 7천5백만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만약 모든 가정에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었다고 가정하면 이 중 40% 가량, 약 3천만톤을 배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에 따라서 이 웨비나에서는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고쳐짓기 물결 전략에 따라 고쳐짓게 될 3천5백만개의 건물과 신규 주택 공급 계획에 따라 새로 짓게 될 1천6백만개 주택 가운데 50%에 열회수배수장치를 설치하여 2030년까지 연간 17.88 TWh 또는 연간 1.54 Mtoe의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자는 것입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의 온실 기체 배출을 감축하겠다는 <기후 목표 계획 2030>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 부문의 온실 기체 배출을 2015년 대비 60% 감축(276 Mton 감축)하고, 건물 부문의 최종에너지 소비를 2015년 대비 14% 감축(50 Mtoe 감축)해야 합니다.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는 이 기후 목표 계획 2030의 건물 부문 최종에너지 감축 목표의 3.07%, 온실 기체 배출 감축 목표의 8.07%를 떠맡을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열회수배수에 관한 최근 레오나르도 에너지의 웨비나의 주요 내용들을 추려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어 다음 글에서는 이 웨비나에서 발표된 열회수배수장치에 대한 실증연구결과와 유럽 열회수배수 협회에 등록된 12개사의 다양한 열회수배수장치들을 정리, 소개하겠습니다.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 파시브기술연구소)
[원자료들]
[웨비나 영상]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열회수배수 시스템”
[웨비나 화면자료]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열회수배수 시스템”
[백서] 유럽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열회수배수기술의 역할
[주석]
[1] 녹색아카데미 웹진에 실린 열회수배수기술 관련한 글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열회수배수장치(DWHR)의 원리에 대하여 (2019년 8월 29일)
- 열회수배수장치의 종류 (1) – 접합관형 (2019년 9월 5일)
- 열회수배수장치의 종류 (2) – 이중관형 (2019년 9월 19일)
- 열회수배수장치의 종류 (3) – 샤워배수구형 및 기타 (2019년 10월 11일)
- 파시브기술 이야기 (4) – 열회수배수 (2019년 12월 26일 – 앞의 “열회수배수장치(DWHR)의 원리에 대하여” 글과 거의 동일한 글)
[2] 상수와 배수는 직접 섞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열만 교환하기 때문에 배수의 오염도는 원칙적으로 열교환에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수의 오염도가 심할수록 배수관의 안쪽 벽에 이물질이 쌓여서 원활한 열전달을 방해합니다. 배수에 섞여 나가는 이물질이 열을 품어서 배수관의 벽으로 전달할 열의 절대량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또 배수가 배수관 벽을 따라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면서 빠져나갈수록 열교환율이 높아지는데 오염도가 심하면 이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정 내 다른 배수에 비해 오염도가 낮은 샤워 배수가 열교환에 가장 유리합니다. (→ 본문으로 돌아가기)
[3] 열회수배수장치의 열회수율, 즉 정상 상태 온도 비율(stationary temperature ratio) ηstationary 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모는 배수와 찬물의 온도 차이이고, 분자는 열을 회수한 뒤의 찬물과 열을 회수하기 전 찬물의 온도 차이입니다. 열회수율이 56%인 경우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배수의 온도가 35 ℃이고, 밖에서 들어오는 찬물의 온도가 10 ℃라면 열을 회수한 뒤의 찬물(T HR)의 온도는 24 ℃가 됩니다.